모든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변을 보고 난 다음에 피가 묻어 나오거나 항문에서 꽤 많은 피가 쏟아져 나오는 경험을 사실 많은 분들이 적지 않게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대장항문전문병원을 찾는 분들 중 한 절반 정도는 혈변 증상을 대부분 호소합니다.
혈변이란, 말 그대로 대변에서 피가 섞여 나오는 증상을 말합니다. 보통 하부위장관인 소장이나 대장, 항문에서 피가 나면 선홍색 피가, 상부위장관인 위나 십이지장에서 피가 나면 검은색의 피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피가 바로 안 나오고 상처 부근에 모여 있다가 나오게 되면 약간 검붉은 색을 띨 수도 있고 색깔의 변화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혈변의 색깔로 어디서 피가 났는지 알아내는 것은 상당히 힘들고 다른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합니다.
피똥 싸는 이유 ① | 치질(치핵/치열/치루)
항문 근처에서 피가 나는 이유는 치핵, 치열, 치루 등 치질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 중에서도 치핵이 발생빈도가 가장 높습니다. 항문관의 점막 바로 아래층에 배변을 부드럽게 하게 해주는 쿠션 조직이 있습니다. 이 쿠션조직은 혈관이 풍부하게 있는데, 이 혈관이 계속된 변비 등으로 압박을 받으면 부종이 생기거나 비정상적으로 커져 피가 나거나 항문 밖으로 밀려 나올 수 있습니다. 이를 치핵이라고 합니다.
치핵은 심한 정도에 따라 1도부터 4도까지로 분류하는데, 심할 경우 피가 항문에서 물총을 쏘듯이 많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보통 3도 이상일 때는 수술을 권장하지만, 이 경우에도 재발 방지를 위해 생활습관 개선을 병행하셔야 합니다.
치열은 말 그대로 항문 입구에서 항문 내부에 이르는 부위가 찢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특정 시기에 변이 너무 크고 딱딱해서 혹은 잦은 설사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만성 치열이라고 해서 조금씩 찢어지고 아물지 않아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항문이 한 번 찢어지면 상처 주변에 분비물로 껴서 잘 낫지 않는 데다 자다가 자기도 모르게 긁어서 다시 상처가 덧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치핵과 치열은 기전이 비슷해서 좌욕이 도움이 되고, 상처 부위를 긁지 않아야 되기 때문에 가려움 완화에 도움이 되는 연고들을 함께 처방받아 바르시는 게 좋습니다.
치루는 변이 항문으로만 나와야 되는데, 안쪽 점막과 엉덩이 쪽 피부에 터널이 생겨 그 부위로 변이 끼이고 이로 인해 염증이 생겨 고름이나 분비물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증상을 말합니다. 치루가 있는 분들은 다 나으면 다시 분비물이 상처부위에 껴 다시 염증이 생기는 일이 반복되기 때문에 결국에는 수술을 해주는 게 좋습니다.
항문주위농양은 항생제만 사용하는 것은 효과가 없고 치료 지연 시 괴사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진단이 되면 즉시 절개하여 배농 시켜야 합니다. 단순치루의 경우에는 간단한 수술로 치료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고름이 퍼져 복잡한 형태의 농양이 만들어지고 괄약근 손상까지 생길 경우에는 수술 방법도 복잡해지고 두세 번에 나눠서 수술을 해야 될 수도 있습니다.
피똥 싸는 이유 ② | 대장암
대장암을 초기에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증상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대장암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된 경우에는 체중감소나 대변에 눈에 띄는 혈변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지만, 초기에는 혈변이 있다 하더라도 보통 대변에 피가 약간 묻어 나오는 정도이기 때문에 놓치기가 매우 쉽습니다.
변에 피가 묻어 나온다고 모두 대장암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에 변이 가늘어졌다거나 없던 변비가 생겼다던가 소화불량이 계속 지속된다던가 멍울이 만져지거나 체중이 아무 이유 없이 빠진다던가 이상할 만큼 컨디션이 떨어지는 등의 증상이 혈변과 함께 나타난다면 가까운 병원에 방문해서 검사를 꼭 받아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피똥 싸는 이유 ③ | 염증성 장질환
대변에 피가 묻어 나오는 혈변이 나타나는 주요 원인은 치질이고 대장암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궤양성 대장염이나 크론병과 같은 염증성 장질환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염증성 장질환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장에 염증이 만성적이고 반복적으로 생기는 질환을 말합니다.
염증성 장질환이 있는 경우 실제로 장이 많이 부어있는 대장 점막 부종이라던가 장이 빨갛게 되는 홍반성 변화, 장을 건드리기만 해도 피가 난다거나 장이 헐어있는 미란 또는 궤양 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염증성 장질환은 복통, 설사, 혈변, 체중 감소 등의 증상이 보통 수개월 간 나타납니다.
궤양성 대장염은 염증이 대장에만 생기지만, 크론병은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소화관 전체에 염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궤양성 대장염은 혈변이 주로 나타나는 반면, 크론병은 주로 복통이라든지 천공이라고 해서 장이 뚫리거나 장이 막히거나 협착 또는 고름집이 잡히는 등 더 심한 증상으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장 내시경은 염증성 장질환을 진단하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검사입니다. 하지만 대장내시경을 한다고 해서 염증성 장질환을 바로 진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증상이 장기화된 임상적인 상황과 혈액 정밀검사, 장 이외 다른 장기들의 증상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해야만 정확한 진단이 가능합니다. 염증성 장질환의 진단이 늦어지기도 하고 어려운 이유가 바로 하나의 진단 기준이 정립되어 있지 않고 여러 가지 검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