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리펭귄 실체
아델리펭귄은 남극의 터줒대감으로, 펭귄하면 떠올리게 되는 전형적인 귀여운 외모 덕분에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남극에서 100년 전 수첩이 발견된 이후 아델리펭귄의 실체가 드러나며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아델리펭귄은 19세기 중반 이 펭귄을 처음 발견한 프랑스의 탐험가 아내 이름을 따서 아델리(Adélie)라고 이름 붙여졌습니다. 호기심 많고 겁이 없는 아델리펭귄은 남극에만 살며, 키는 약 75cm, 황제펭귄 체구의 절반보다 약간 크고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머리와 등은 짙은 검정색이고, 가슴과 배는 흰색입니다.
충격적인 아델리펭귄 실체
그동안 몰랐던 아델리펭귄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수첩을 쓴 당사자인 조지 머레이 레빅 박사에 대한 사전지식이 조금 필요합니다. 레빅은 외과 의사이자 동물학자로 1910~1913년 남극을 탐험했던 스콧탐험대의 일원으로 참가해 펭귄의 생태를 연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레빅 박사는 남극탐험 연구과정에서 수컷 아델리펭귄이 번식 목적과 무관하게 암컷 아델리펭귄과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수컷 아델리펭귄과 암컷 아델리펭귄의 이상한 성생활은 이 뿐이 아니었습니다.
수컷 아델리펭귄은 암컷 아델리펭귄의 신체를 학대해 강압적으로 관계를 맺기도 했는데, 인간사회에서조차 범죄에 해당하는 행동도 있었습니다. 레빅 박사는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모두 수첩에 기록했는데, 1912년 탐험대의 오두막 주변에서 잊어버려 그 동안 행방을 알 수 없었습니다.
레빅 박사는 남극탐험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와 그동안 몰랐던 아델리펭귄의 타락한 성생활을 학술지와 보고서에 상세히 적었지만 학계는 출판하기에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문제의 내용을 삭제하고 말았습니다.
레빅 박사는 자신의 아델리펭귄의 실체에 대한 학술지와 보고서의 내용이 삭제되자, 별도의 보고서 100부를 출판해 배포했는데, 보고서는 현재 2부만 남아 있습니다.
영국 자연사박물관은 2012년 이 보고서를 발견하고 공개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대중은 아델리펭귄에게 주목하지 않았고 아델리펭귄에 대한 실체도 묻혀지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2013년부터 발생했는데, 스콧 탐험대 오두막 주변의 눈이 녹으면서 레빅 박사의 수첩이 발견된 것입니다.
100년 전 수첩은 얼음과 물 때문에 종이들이 전부 달라붙어 연필로 쓴 글씨들이 알아볼 수 없었지만 프랑스의 한 전문가가 7개월 동안의 복구 작업 끝에 100여 년 전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데 성공했고 2014년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아델리 펭귄에겐 그동안 감춰져 있던 금서(禁書)의 내용이 레빅 박사의 수첩에 의해 세상에 펼쳐진 순간이었습니다. 수컷 펭귄은 암컷 펭귄과 강압적인 관계를 하고, 어린 펭귄에 대해 학대를 일삼으며 번식과 무관한 관계를 일삼고 심지어 동성끼리 관계를 즐기는 모습까지 보이며 성에 대한 악마같은 욕구를 드러냈다고 적혀 있어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델리펭귄은 어린펭귄과 강제로 관계를 맺다가 죽이기도 하며, 심지어 죽은지 1년이나 지난 암컷시체와 시간(屍姦)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 것입니다.
시간(屍姦)이란, 시체를 간음하는 것으로 이미 죽은 사체를 대상으로 자신의 성적욕규를 해소하려는 행위를 이르는 말입니다. 사람 사회에서도 시간(屍姦)은 매우 중대한 처벌을 피할 수 없는 행위이지만, 사실 동물사회에서도 이를 확인한 사례는 극히 드물며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실 아델리펭귄은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성격이 사납고 공격적이기 때문에 가까이 근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아델리펭귄은 호기심이 많고 겁이 없어 공격성이 높은데, 의외로 성깔이 턱끈펭귄 맞먹을 정도이며 심지어는 다른 펭귄이 집 짓는데 쓰는 조약돌을 도둑질하거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약한 황제펭귄의 새끼들을 쫓아내기도 합니다.
아델리펭귄은 먹이로는 얼지 않은 물에서 물고기나 낙지 등을 잡아먹으며, 9~10월에는 번식지로 돌아와 돌로 둥지를 만들고 떼지어 번식하는데, 한번에 2개의 알을 낳고 암수가 교대로 약 36일 동안 알을 품습니다. 펭귄 가운데서도 가장 개체 수가 많은데, 최소 500만 마리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