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은 얼핏 사자성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문장에서 앞 글자만 따 만들어진 신조어이며, 한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로남불은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뜻으로 해석해 아시타비(我是他非)라는 사자성어, 한자로 옮겨 쓸 수는 있습니다.
내로남불 한자로 옮겨 쓰면 아시타비?
내로남불은 똑같은 과오라 하더라도 자신의 과오는 마땅히 그럴 수밖에 없는 원인이 있어서이고, 다른 사람이 한 잘못은 그 사람의 잘못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이상한 논리에서 비롯됩니다. 아시타비(我是他非)는 글자 그대로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라는 뜻이며,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한문으로 옮긴 신조어입니다.
'아시타비'는 나와 우리를 뜻하는 [나 아(我)], 옳음을 뜻하는 [바늘 시(是)], 타인과 다른 사람을 뜻하는 [다를 타(他)], 그르다의 의미를 가지는 아닐 비(非) 자를 씁니다. 아시타비 뜻은 내가 하면 옳고 상대가 하면 틀렸다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꼬집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시타비는 원래 있던 사자성어는 아니며, 2020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채택되며 만들어진 신조어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정치적, 이념적 갈등이 극심해 자기편이면 무조건 옹호하고 상대편은 따져보지도 않고 무조건 공격하고 폄훼하는 잘못된 세태가 아시타비 사자성어가 만들어진 이유이며, 유래라 할 수 있습니다.
후안무치 뜻, 유래
후안무치(厚顔無恥)는 두터울 후(厚), 얼굴 안(顏), 없을 무(無), 부끄러울 치(恥)로 이루어진 사자성어로, 얼굴(낯가죽)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뜻입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어림없는 짓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나 뻔뻔스러운 사람을 지칭할 때 주로 쓰이며, 흑심을 품었다가 뻔뻔하게 나온다는 점에서 인면수심과 의미가 상통합니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짐승의 마음씨를 가졌다는 뜻의 한자성어로,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나 할 법한 짓을 저지른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중국의 하나라 계(啓) 임금의 아들인 태강은 정치를 돌보지 않고 사냥만 하다가 나라를 빼앗기고 쫓겨나게 되는데, 나라를 망친 형을 원망하며 다섯 형제들이 번갈아 부른 노래 대목 중 '백성들은 우리를 원수라 하니, 우린 장차 누굴 의지 할꼬, 답답하고 섧도다, 이 마음 낯이 뜨거워지고 부끄러워지누나'라는 대목에서 후안무치의 유래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후안'이란 두꺼운 낯가죽을 뜻하는데, 여기에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무치'를 더하여 후안무치'라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얼굴은 마치 열 겹의 철갑처럼 두껍고 뻔뻔하다는 후안무치는 사람의 탈을 쓰고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의미의 인면수심을 연상케 합니다.
치(恥) 자는 이(耳귀)에다 심(心마음)을 합하여 이루어진 글자로, 남의 비난을 들으면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에서 '부끄러워하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조선 세조 때의 일이다. 충청도 관노가 부친과 조부의 땅을 영의정 황수신에게 빼앗겼다고 호소했다가 거꾸로 옥에 갇히는 일이 있었는데, 당시 조사에 나선 사헌부는 황수신이 실제로 땅을 빼앗았다고 보고했지만, 세조는 죄가 없으니 다시 거론 말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에 사헌부는 예의염치(禮義廉恥)의 네 가지 근본이 없으면,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며 나라는 그 나라가 아니니 진실로 두려운 것이라며, 그의 처벌을 재차 요청했지만 세조는 자신의 집권을 도운 공신이라는 점을 들어 죄를 더 이상 묻지 말라고 명한 바 있다.
염치(廉恥)라는 단어는 조선왕조실록 원문에 1514번이나 등장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졌는데,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곧 염치라 할 수 있습니다. 귀를 막고 부끄러움을 모를 정도로 뻔뻔한 것을 몰염치(沒廉恥), 그런 사람을 파렴치한(破廉恥漢)이라고 하는데, 염치없는 정도를 최고가 후안무치라 할 수 있습니다.